평창 스페셜올림픽이 5일 막을 내렸다. 일반 올림픽과 달리 이 대회엔 지적발달장애인들만 출전할 수 있다. 그들은 한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타인과의 소통 능력도 떨어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어울리는 세상에서 늘 외톨이가 되곤 한다. 이런 친구들이 비장애인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생긴 대회다.
이번 대회에서 특히 주목받은 공연이 하나 있었다. 개막행사 때 열린 ‘하트하트오케스트라’의 공연이다. 장애 특성상 어울리지 못하던 발달장애 단원들이 하나의 목소리로 심포니 연주를 했다. 이를 보고 주위에선 다들 ‘기적’이라며 놀라워했다. 절대 이뤄질 수 없다고 믿었던 것이 이뤄지는 것을 ‘기적’이라 한다. 이런 면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연주를 ‘기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처럼 ‘기적’은 인간의 상식에서 벗어난 현상이다. 가령 죽었던 사람이 갑자기 살아나거나 걷지 못했던 이가 어느 날 벌떡 일어서 걷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인간의 상식이 세상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을 우리의 잣대로 평가하고,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다.
나는 의료사고로 장애인이 됐다. 출생 당시 10여 분 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고 한다. 모두 죽었다고 생각할 즈음 살아났다. 그러나 병원은 냉담했다. 며칠 못 산다고 했다. 살아나더라도 식물인간이 되리라고 그들은 장담했다. 한데 나는 지금까지 살아있다. 몸도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대학도 입학했으며, 지금은 버젓이 앉아 칼럼을 쓰고 있다. 인간의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 불가다. 그야말로 ‘기적’이다.
이렇게 살아온 내게 기적이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전제조건이 있다.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 않아야 한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의 제작자가 발달장애인들의 한계를 정했었다면 그들의 멋진 연주는 없었을 거다.
작년 한 해 우리나라는 힐링 열풍이었다. 너도나도 아프다고들 했다. 세상이 쳐놓은 장벽을 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다른 말로 세상이 우리의 한계를 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 한계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추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한계에 부딪히면 ‘아프다’ ‘힘들다’며 그들이 정한 한계를 좀 낮춰달라고들 한다.
나는 이런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제 자신의 한계는 자신이 설정하라고 말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한계만 따르는 이는 살아가기 급급하지만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고 이를 끊임없이 뛰어넘으려는 자는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다.
누군가 내게 얘기한다.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고. 나는 답한다.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두려워 말고, 당당히 그리고 한계에 도전하다 보면, 분명히 기적이란 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심 지 용 단국대 언론홍보학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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