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무서워요? 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의 어린이 직업체험 테마파크 키자니아. 안전장비를 갖춘 채 이곳 소방재난본부의 화재 현장에 들어선 정연우(가명·14·서울맹학교)군이 진행요원의 양손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지하 음료수 창고에서 발생한 화재를 그대로 재현한 현장은 연기가 자욱했고 곳곳에서 비상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정군의 손을 잡고 좁고 구불구불한 지하 계단을 내려간 안내요원은 ‘무섭지 않다’고 안심시킨 뒤 소방호스를 쥐어주며 함께 불길을 잡았다. 전군은 “평소 소방차를 타 보는 게 소원이라 용기를 내 화재 진압 체험을 신청했다”며 “그동안 생각만 하고 해 보지 못한 일을 마음껏 경험할 수 있어 즐겁다”는 소감을 밝혔다.
기독교 사회복지법인인 하트하트재단(이사장 신인숙)은 이날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후원으로 ‘시각장애아동을 위한 직업체험활동’ 행사를 열었다. 전국 9개 맹학교 학생 300명, 교사 및 은행 임직원 봉사자 500여명이 참가한 이번 행사는 시각장애아동에게 직업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시각장애아동들은 안내자 역할을 맡은 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60여개의 직업체험시설에서 성우, 은행원, 아나운서, 경찰, 수질연구원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 외출이 쉽지 않은 이들은 놀이동산처럼 꾸며진 직업체험시설에서 간식과 가구를 만들며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강원도에서 온 김민정(가명·13·강원명진학교)양은 “손톱에 내가 좋아하는 분홍색의 매니큐어를 발라 준 미용실 체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꿈이 피아니스트라 이곳에서 장래희망과 관련한 체험을 할 순 없었지만 여러 가지를 만지고 직접 만들 수 있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찾아 직업체험에 적극적인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장래희망이 7급 공무원인 최현모(가명·16·서울맹학교)군은 대법원 직업체험관을 찾았다. 최군은 이곳 모의법정에서 판사복을 입고 변호사들의 변론을 들은 뒤 판결을 내리는 판사 역할을 맡았다. 모의재판은 최군의 봉사자가 곁에서 대본을 낮은 목소리로 읽고, 이를 들은 최군이 명확한 목소리로 다시 말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7세 때 시력을 거의 잃은 최군은 “어릴 때부터 항상 검사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걸 알기에 2년 전 꿈을 7급 공무원으로 바꿨다”며 “이곳에서 관세청과 대법원을 찾았는데, 다음엔 단순히 대본을 읽는 체험이 아니라 좀 더 실제적인 경험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날 직업체험을 한 시각장애아동들의 장래희망은 변호사, 대학교수, 피아니스트 등 각양각색이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2012년 현재 시각장애인의 7.4%만이 침술·안마 분야의 직업교육을 희망한다고 답했고 나머지 92.6%는 컴퓨터·정보처리, 공예 등 기타 기술을 익히고 싶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시각장애교육기관 교육과정은 안마 분야에 편중돼 있는 게 현실이다.
윤주희 재단 사무국장은 “어릴 때는 다양한 꿈을 꾸다가도 사회에 나가서는 진로가 한정돼 있는 현실에 좌절하는 시각장애아동이 적지 않다”며 “이번 체험이 이들에게 자신의 가능성을 더 많이 알게 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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