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애들이 내 눈 보고 눈탱이래.”
얼마 전 놀이터에서 놀다 들어온 아들 찬희(7)군의 말에 김응수(53)씨는 가슴이 철렁했다. 찬희는 녹내장으로 인한 저시력 장애를 갖고 있다. 1m 앞의 사물도 분간하지 못한다. 김씨는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찬희에게 수술을 받게 했다. 김씨는 수술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수술은 성공하지 못했고 후유증으로 눈이 돌출된 찬희는 자주 친구들의 놀림감이 됐다.
김씨도 저시력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동네 아이들의 놀림거리였다. 김씨는 함께 놀던 아이들이 던진 공을 받아낼 수 없었다. 학교 생활도 쉽지 않았다. 책상에 바짝 엎드려 책을 눈 가까이 갖다 대야만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교사들은 “왜 수업시간에 자느냐”며 꾸중하기 일쑤였다. 김씨는 결국 공부를 포기하고 안마를 배웠다.
그에겐 가난이 따라다녔다. 안마사로는 네 아이를 먹이고 가르치기에 벅찼다. 일거리가 없는 날이 더 많았다. 가난에서 벗어나 보려고 2008년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했다. 부동산법에서부터 민법·세법까지 공부해야 할 것이 많았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점자 책을 읽는 데 남들의 서너 배 넘는 시간이 걸렸다. 오디오북은 아무리 들어도 돌아서면 내용을 잊어버렸다. 2년여를 공부했지만 결국 안마시술소로 돌아가야 했다. 그나마 지난해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안마일조차 계속할 수 없게 됐다. 어깨 골절상을 입은 탓이다. 김씨는 이때부터 정부 지원금 100여만원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김씨는 독서확대기를 마련하려 백방으로 애썼다. 글자를 최대 57배까지 크게 해주는 확대기만 있으면 아이들이 공부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장애를 물려줬지만 가난은 물려주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하지만 컴퓨터처럼 생긴 탁상용 확대기의 가격은 대당 350만원. 도저히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복지관에 신청서를 내보았지만 번번이 탈락했다.
김씨는 “확대기만 있으면 일반인처럼 볼 수 있는데 가난 때문에 아이들이 꿈을 포기할까 두렵다”고 말했다.
◆하트하트재단·중앙일보, 확대기 보급=하트하트재단(www.heart-heart.org)과 중앙일보는 지난 2일 저시력 아동 150명에게 독서확대기를 전달했다. 혜영이도 이날 찬희와 함께 쓸 확대기를 받았다. 400여 명의 신청자 중 가정 형편과 학습 열의 등을 고려해 150명을 우선 선발했다. 선천성 무홍채증으로 저시력 장애를 갖게 된 남미애(18)양은 “고3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을 받았다. 열심히 공부해 꼭 꿈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하트하트재단 신인숙 이사장은 “확대기 보급뿐 아니라 시신경 재활 치료도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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