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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소통과 나눔, 발달장애청소년 오케스트라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

등록일:2009-09-15 조회수:53,292

[소통과 나눔] <67> 발달장애청소년 오케스트라 '하트하트윈드'

'갇힌 세상' 열고 나온 선율… 바깥세상과 화음 맞추죠
2006년 창단후 30여 차례 공연… 국제음악제에 참가도
에쓰오일서 적극 후원 "이젠 돈 걱정없이 맘껏 연주해요"

 
2009-09-03

▲ 발달장애 청소년들로 이뤄진 하트하트윈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지난달 24일 서울 가락동 하트하트재단 연습실에서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제주국제관악제'가 열리는 서귀포시 천지연폭포 야외공연장에 저녁 어스름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폭포 구경을 다녀온다" "옷을 갈아입는다"며 부산을 떨던 오케스트라 단원 26명이 저마다 악기를 챙겨 들었다.

공연 시작 30분 전, 다들 약속이나 한 듯 무대 위 제자리를 찾아갔다. 악장의 신호에 맞춰 악기 튜닝 소리가 퍼져나가고, 야외 객석의 빈자리도 하나둘씩 채워졌다. 영국 작곡가 구스타프 홀스트의 <군악대를 위한 제1모음곡> 3악장으로 공연의 막이 올랐다. 올해로 창단 4년째의 '하트하트윈드 오케스트라'의 국제음악제 데뷔 무대였다.

'하트하트윈드 오케스트라'는 2006년 봄 창단이래 3년6개월여동안 기적을 이뤄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실은 '발달장애 청소년들로 구성된 국내 최초의 관악단'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는 점.

하트하트재단이 음악치료의 차원을 넘어 발달장애우 오케스트라를 만든다고 했을 때, '과연 합주가 가능할까'하고 반신반의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하트하트윈드 오케스트라는 3차례의 정기연주회, 시카고와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연주여행 등 크고 작은 공연 30여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창단 때부터 지휘를 맡고 있는 지휘자 박성호(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상임단원ㆍ트롬본)씨는 이날 공연이 끝난 뒤 "단원들이 독특한 무대 분위기와 사운드를 느끼며 만족스러운 연주를 보여줬다"며 "아직 공연 때 지도자의 도움을 약간씩 받고 있지만, 언젠가는 단원들만으로 공연을 완성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지금까지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지도자, 그리고 부모들은 숱하게 고통과 감격을 오갔다. 연습때는 말할 것도 없고 공연 중에도 중간에 벌떡 일어나거나 자기 파트가 아닌데도 연주를 하는 등 엉망진창이었다. 박성호 지휘자는 그때마다 "발달장애우라는 생각을 접고 따끔하게 혼을 내면서" 오케스트라의 틀을 갖춰나갔다.

겨우 악보나 읽을 줄 알았던 단원들의 연주실력은 이제는 관현악의 고전 레퍼토리를 소화하기에 손색이 없다. 이들의 변화는 연주실력에서 그치지 않았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던' 이들이 이제는 친구들과 더불어, 동료들과 어울려 호흡하고 음을 맞추고 연주를 완성하는 법을 배웠다.

이날 공연에서 플루트 솔로로 협연한 이영수(21ㆍ백석예술대 관현악과 2학년ㆍ정신지체2급)군도 이 오케스트라를 통해 '세상 속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이 군은 하트하트윈드 오케스트라에서 음대에 진학한 1호 단원. 올 1학기에 전공실기 과목은 모두 A+학점을 받고 전액장학금을 받는 등 대학생활에도 잘 적응했다.

이 군은 원래 대학 진학까지는 꿈꾸지 않았다. 음대 진학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고3이던 2006년 하트하트윈드 오케스트라와의 만남은 그의 삶을 바꾸었다. 플루트를 손에 잡은 건 중2때 학교(정진학교)에서 만든 합주단에 들어가면서부터였지만, <고향의 봄>처럼 짧은 곡을 연주하는 수준이었다. 2006년 8월 오케스트라 입단 오디션에서 이 군은 처음으로 4페이지나 되는 <스타미츠 콘체르토> 악보를 받아 들었지만 곧 연주해 냈다.

어머니 신영숙(서울 가락동)씨는 이 군의 진로를 두고 고민을 시작했다. 이 군은 고등학교 졸업 뒤 사립 음악전문학교에 몇달 다녔다가 힘겨운 재수생활에 들어갔다. 어머니 신씨가 도배일로 가계를 꾸려가는 가정형편 때문에 비싼 레슨비를 내면서 따로 입시레슨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 군은 오케스트라 자원봉사 지도자의 레슨만으로도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4년제 대학 편입도 준비 중이다.

이 군에게 오케스트라는 즐겁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친구들과 같이 연주하는 거 10%밖에 힘들지 않다. (솔로와 오케스트라)둘다 좋다"며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작년)미국에서 한 공연"을 꼽았다.

오케스트라에는 공연 때 무대에 서는 정단원 26명 이외에도 입단 대기 중인 준단원, 그리고 장애아동을 위한 음악교육 교실 학생 등 80여명이 음악적 재능을 키워가고 있다. 음악교육이 워낙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재단과 학생 모두 부담도 크다.

하지만 S-OIL(에쓰오일)과 같은 대기업 지원을 받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또는 환아 등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병원 등을 찾아가 무료 콘서트를 연다. 박성호 지휘자를 비롯해 악기를 지도하는 선생님들도 교통비 정도만 받고 자원봉사로 나섰다.

선희정 하트하트재단 팀장은 "발달장애우들은 개인으로는 재능을 발휘해 인정받는 경우도 많지만, 사회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연주는 불가능하다는 선입견이 많았다"며 "하지만 (우리)아이들은 해냈다"고 말했다. 세상에 무관심하던 아이들이 서서히 갖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자랑하고 싶은 일들도 많아졌다.

선 팀장은 "발달장애우들은 대개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바깥 세상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욕심도 없고 두려움도 모르는데, 우리 아이들은 '대학에 가고 싶다' '더 좋은 악기를 사달라'고 조르는 등 욕심도 생기고 공연할 때 무대에서 떨기도 한다"고 전했다. 하트하트윈드 오케스트라의 발달장애우 단원들은 음악을 통해 세상과의 사이에 쌓여있던 담을 허물어 가고 있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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