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Magazine 다솜이 친구] 진짜 베토벤 바이러스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등록일:2009-01-15 조회수:5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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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워크’ 불가능한 발달장애우에게‘합주’는 기적
“뭔가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 제 3회 정기공연이 열린 서울 강남의 장천아트홀. 이곳에서 만난 이 오케스트라의 박성호 지휘자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마에스트로 박’(현재 강남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단원으로 봉사 차원에서 일주일에 두 번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를 지도하는 그는 ‘지위자’로 불리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차라리 ‘사회복지사’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그러나 취재진에게 단원들을 한 눈에 휘어잡는 마에스트로로 보였기에, 이하 ‘박마에’로 표현하기로 한다)은 이 오케스트라의 초대 지휘자로 2006년 3월 단원들을 만났다.
하트-하트재안에서 ‘국내 최초로 발달장애우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만든다“며 도움을 청하자 흔쾌히 승낙을 했다. 그 이유에 대해 박마에는 ”내겐 4살 난 아이가 있고, 이 아이가 장애우들과 친하게 지내길 바랬는데, 때마침 알맞은 제의가 들어온 것“이라고 짧게 말했다.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불가능한 일에 도전한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발달장애우들을 이끌기가 무척 힘들었다. 의사들도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발달장애우들은 개인종목의 경우 가끔 성공한 사례가 있습니다. 영화와 방송으로 유명해진 마라톤의 배형진 군, 수영의 김진호 군이 그렇죠. 그러나 팀워크를 맞춰야 하는 오케스트라는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의사 선생님들도 차라리 독주를 연습하는게 나을 거라고 조연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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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 한계는 없어, 끊임없이 고급 연주 도전할 것
뚜껑을 열어보니 실제로 오케스트라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단원들의 연주 실력은 둘째 치고, 서로 파트를 나눠 합주를 해야 할 부분에 모두 멜로디 부분만 연주했다. 자신의 파트가 나오지 않는 부분에서도 멈추지 않고 다음 부분을 혼자서 연주하고, 겨우 설득해서 멈추게 하면 불안한 마음에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가만히 있지 못했다.
“그랬던 아이들이 오늘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를 연주합니다. 핀란디아는 웬만한 대학생들도 맞추기 힘든 연주예요. 그러니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의사선생님들도 발달장애우들이 합주를 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드물다며 기적이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적은 공짜가 아니었다. ’기적‘이 일어나기까지 박마에와 아이들의 ’피나는‘연습이 필요했다.
“노래 한 곡, 한 파트를 맞추려면 비장애인들에 비해 4~5배의 반복 훈련이 필요해요. 그러나 아이들으니 5분 이상 집중하지 못해요. 이런 아이들과 3시간 이상 같은 부분을 수없이 반복하는 겁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제멋대로 돌아다니고 벽에 머리를 박으며 자해하는 아이들을 설득하고 때론 호통을 쳐가며 연습을 반복했다. 그런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어머니들도 박마에와 아이들의 ‘분투’를 보며 눈물을 훔쳤다.
그런 ‘전쟁 같은 시간’을 1년여 보낸 뒤 첫 연주회에서 ‘도레미 송’ ‘사랑으로’ 등을 연주했을 때, 공연장은 감동의 물결, 통곡의 바다였다. 이들이 그 동안 걸어온 길을 아는 사람들에게 연주의 수준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날 관객들은 이 기적의 오케스트라에게 기립한 채 몇분이고 계속해서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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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엄없는 관심이 장애를 극복하는 힘이자 기적의 원천
오케스트라 활동으로 이들의 인생은 180도 변했다. 아이들이 꿈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다. 또한 자신의 꿈을 위해 부모에게 뭔가 요구한다는 것도 엄청난 변화다.
대기실에서 만난 홍정한 군(고2, 플루트 연주자)은 “연습이 힘들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너무 재미있다. 하루에 3시간씩 연습한다. 다음에 커서 (프로)연주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보라 양(고1 플루트 연주자)역시 “연주가 재미있다. 나의 꿈은 간호사가 되는 것이다. 간호사가 돼서 아픈 사람을 고쳐줄 것이다. (홍정한 군을 가리키며)얘도 내가 고쳐줄 거다”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하트-하트재단의 오은혜 팀장은 “자신의 세계에 갇혀 사는 발달장애우는 내가 남보다 못해서 화가 나거나, 남보다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위해 부모에게 더 좋은 악기를 사 달라고 조르는 등 뭔가를 요구하고 있다. 의사들도 이 부분은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오 팀장은 “무대에 쏟아지는 조명,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 등이 장애를 극복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결국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기적을 이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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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순회공연에 자선공연도 10여 차례, 공연 때마다 기립박수
이들의 ‘기적’은 장애우에 대한 복지와 연구 등에 있어 한국보다 선진국인 미국의 전문가들까지 놀라게 했다. 시카고 발달장애전문기관인 메이그래함재단이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를 초청한 것이다. 이들은 2008년 9월 24일부터 10월 3일까지 시카고와 LA지역에 7차례에 걸쳐 순회공연을 다녀왔다. 또한 늘 도움을 받던 이들이 음악을 통해 자신보다 어려운 소외계층과 병원의 환자들을 위한 나눔콘서트도 열었다.
개인연습에 열심이던 단원들이 무대 리허설(최종연습)을 위해 자리에 앉았다. 과연 이들의 연주 실력은 어떨까, 호기심과 기대에 차서 연주를 기다렸다. 이윽고 박마에의 손짓에 일사분란하게 연주가 시작됐다.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연주가 시작된 지 1분도 지나지 않아 그 ‘선입견’이 얼마나 부끄러운 짓이었는지 이 기적의 오케스트라는 깨우쳐주었다. 그들의 연주는 프로들처럼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진 않았지만 웬만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견주어 손색이 없을 정도로 좋았다. 리허설이었지만 연주가 끝난 뒤 저절로 일어나 박수를 치게 될 정도였다.
소외 ‘자폐아’라고 불리는 발달장애우들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심정을 한 마디로 이렇게 말한다. ‘자식이 부모보다 하루 먼저 죽기를 바라는 게 우리들입니다.’자식 키우는 부모로서, 자식이 먼저 죽기를 바라는 부모가 세상천지 어디 있으랴. 그러나 발달장애우들의 경우, 누군가 돌보지 않으면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 ‘내 자식이 나보다 하루만 먼저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그들의 피맺힌 절규이자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을 고스란히 나타낸다.
그런 부모들의 눈에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 클래식을 연주하는 자식의 모습은 단순히 ‘대견하고 장하다’는 것 이상으로, ‘내 아이가 나 없이 혼자서 세상을 살 수 있겠구나, 이제 내가 내 자식보다 먼저 눈감아도 되겠구나’라는 희망의 빛인 것이다.
‘박마에’ 박성호 지휘자 역시 이들 부모의 마음을 알기에 “내 꿈은 이 아이들이 (프로연주자가 되어) 자기 이름으로 세금을 내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의 공연은 그래서 특별하고, 그래서 공연마다 기립박수와 감동의 눈물바다를 이룬다. ‘오케스트라’의 목적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라면, 이들은 분명 세계 최고의 연주를 하는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임이 분명하다.
<출처 : 교보생명Magazine 다솜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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